세운상가는 유명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이다. 지상부터 3층까지를 차량과 사람의 무대로 조성하여 그전에는 없었던 '분리'에 대한 개념을 우리나라 최초로 실현하려고 했던 건축이다. 이곳은 전자 상권이 활발하게 들어섰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길게 이어진 서울 최대의 슬럼가는 수십 년간 정치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그런 암흑기 동안 몇몇은 터전을 떠나가나 외면해왔다.


하지만 묵묵히 지켜온 이들도 있었다. 결국 세운상가부터 진양상가까지의 입체 보행축 형성과 도시재생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새로운 피를 수혈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자 상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이 발을 담그며 서로가 서로를 찾게 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감각 있는 콘셉트의 상점들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청년 사업가들은 세운상가의 리노베이션을 앞장서서 이끄는 중이다.


도시재생은 우리의 뿌리 깊은 관념을 바꿔가는 일이다. 우리는 관념으로 박힌 것을 경계하며 이전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들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고심한다. 미래를 위한 전진은 꼭 건축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우리는 죽어 있는 곳에 신선한 유기적인 것들이 꿈틀 되기 바라며 그 동네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는 일을 재생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새롭게 마주할 입체도시, 세운상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다시 마주한 입체도시. 서울 세운상가

Use

상가, 아케이드

Location

서울시 종로구

Text

홍순하


Photos

박소희


Architecture Keyword

Mix use, Eyesore, Urban Regeneration


Site. sewoonplaza.com

Details


1960년대부터 착공된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첫 삽을 뜬 곳이다. 그는 입체 도시를 형성한 후에 꼬인 실타래 같은 교통의 혼잡함을 어느 정도 분리시키길 원했었다. 세운상가부터 쭉 이어진 상가를 연결하여 지상은 차도이자 주차장, 3층은 공중 복도로 서울의 커다란 연결의 꿈을 가졌었다. 이때 종묘와 남산으로 이어진 녹지 축은 서울의 원대한 꿈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한국에 나타난 새로운 층, 끊겨버린 원대한 꿈 세운상가.

청계천변의 고물상 지대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전자 제품들 덕에 서울에서 제일가는 전자 상가로 변모해갔다. 하지만 세운상가는 결국 처치할 수 없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해버렸다. 70년대 서울 개발의 중심이 강남으로 이전되고 종로 도심 상권은 시간이 갈수록 쇠락해갔다. 특히 상가들끼리의 건설사가 다른 점은 처음에 구상했었던 공중 복도를 잇겠다는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악조건들이 겹치면서 세운상가의 주변은 걷잡을 수 없이 슬럼화가 되었으며 1km가 훌쩍 넘는 거대 입체 도시의 미래는 정치권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세운상가부터 이어진 전체 상가들을 허물고 녹지를 만들겠다는 제안이 유력해 보였지만 서울시는 역사성을 고려한 그대로의 보존과 상가의 새로운 활용성을 찾겠다는 목표로 이곳 일대의 도시재생을 최종 결정했다. 이때 발표된 재생 프로젝트가 '다시, 세운'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도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최근 레트로의 열풍과 맞물려진 관광지 보존과 상가 안전성 진단의 위기는 확정된 계획들을 표류시키는 듯 싶었다. 하지만 세운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또다시 '서울 최대의 슬럼'이라는 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되면서 나오는 거센 반발과 주요 공사들의 번복에도 그들은 이 자리에 앉아서 꿋꿋하게 버텼다. 오랜 터전을 향한 사랑은 웅크리고 낮은 자세로 있을지언정 이곳을 포기하지 않았다.

흐린 겨울을 지나 햇빛이 들어선 후, 고목이 남긴 씨앗은 발아하여 새싹을 틔어냈다. 그들은 황량한 상가 복도에 자신들이 본디 가지고 있었던 색들을 새롭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전자 상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빛나는 젊은 기술자들의 무대가 되었고 그들 사이를 잇는 '기술 허브(hub)'로 발돋음했다. 꿈틀 되기 시작한 재성장의 기회는 전자를 포함한 다른 분야에도 주어졌다. 감각 있는 이용자들이 찾아오는 카페와 상점들이 상가 곳곳에 생겨났으며, 다양한 업종들의 시너지 안에서 전통 전자 상가들도 다시 성장했다. 나라의 정책부터 발 벗고 도와주는 덕분에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 걸친 공유 이익이 도시재생에 박차를 가해주고 있다.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신 '서울 익스프레스 기술 랩 (seoulexpress)'의 미디어 아티스트 전유진, 홍민기 님의 랩실이다. 이 랩실은 전시와 공연을 위한 작품 제작 및 장치 개발 등을 하고 있으며 매년 다양한 주제로 음악. 영상, 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내놓는다.

세운상가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다. 세운상가 한편에는 전자 상가의 과거를 마주할 수 있는 '세운 전자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내부 인테리어를 옛 전자 상점의 콘셉트를 접목시켜서 훌륭한 테마관을 구성했다. 그때 그 시절에 쓰였던 클래식 전자기기들은 누군가에게 향수를, 어떤 이에게는 처음 보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아카이빙이 된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들은 잘못된 것을 손쉽게 포기하려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껴 치부를 숨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비난에 직면하여도 외부의 의견을 빠르게 수용하여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 발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관성이 붙은 발전이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도시도 이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은 세운상가의 건설 이후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흉터 위에 새 살이 돋아나는 중이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나온 교훈들은 세운상가의 재생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지어지는 새로운 건축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지침이 되었다.


김수근이 꿈꾸었던 공중 복도는 이제서야 건설되고 있으며 회색 도시의 메말랐던 활기는 자신의 취향을 찾는 젊은 층들의 유입으로 생생함을 되찾았다. 옛날부터 내려온 전자 상가들과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만남의 장은 훌륭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중이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도시재생은 멈췄던 도시에 순풍을 받아주는 돛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서야 입체도시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어렵사리 다시 찾은 활기가 꺼지지 않도록, 동네를 향한 애정이 흩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우리의 온몸을 맡겼던 소중한 이곳과 작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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